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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고민

내가 신입 때 본 면접 경험 - 절망편

by 냉동만두 2025. 2. 17.

처음 일 구하면서 면접본 기억을 다듬어 작성 했다. 어느정도 추억 보정이 들어가 있지만, 뼈대는 사실이다.

 

최저 연봉 강요

구로디지털단지, 무슨무슨 IT 타워에 있는 작은 공공기관 SI 인력사무소 였다. 구인 정보에서 본 것보다 훨씬 작았고, 첫인상부터 '어라... 뭔가 수상한데?' 싶었지만, 일단 면접은 본걸로 기억 한다. 면접을 진행한 사람이 팀장이었는지, 이사였는지는 잘 기억 안나지만, 이력서를 받아 들더니 마치 처음 보는 이력서처럼 한참을 읽었다. 면접 시작 전에 이력서를 안본 느낌 이었다. 간단한 회사 소개가 이어졌고, 공공기관 프로젝트에 투입될 거고, 입사하면 바로 파견 나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아, 이거 완전 SI 자체네' 싶었지만, 어차피 몇 년 경험 쌓을 생각이었으니 큰 기대는 안 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 주고받더니 바로 연봉 얘길 시작 했다.

 

"연봉 얼마 받고 싶어요?" 라고 묻길래, 기사 자격증 있고 공공기관 SI는 인건비 산정에서 어느 정도 인정해 준다고 들었기에 2800 불렀다. 그랬더니 살짝 웃으면서, "최소 금액은 얼마까지 생각하세요?" 연봉 협상을, 용산 터미널상가 카메라 파는것 같았다.

복지나 성장 기회, 성과 보상이 괜찮다면 2600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지만, 돌아 오는 답변은 "아니... 진짜 최소 금액! 이 돈 아니면 일 못 한다! 이정도의 마지노선이 얼마에요?" 나도 지지 않고, 2600 밑으로는 안 된다고 했더니, 이력서 한쪽 구석에 2400을 적으며, "자, 일단 2400으로 합시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해요?" 라고 물어보더라. 당연하게도 퇴직금 포함 연봉 2400 이었음.

 

이럴꺼면 그냥 처음부터 신입 연봉은 이정도 라고 얘길 하지, 빙빙 둘러 강요 했는지 모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 나쁜 면접 이었다. 합격 했지만 당연히 가지 않았다.

 

 

화천 메이커 부대

위치는 구디 또는 가디 였고, 공공기관 및 대기업 SI 업체였다. 그날도 더운데 양복 입고 면접 보러 갔는데, 이번엔 회사가 아니라 카페로 오라 하더라. '뭐야, 커피 한잔 얻어먹고 면접 보는 건가?' 싶어서 갔는데, 먼저 온 사람이 아직 면접을 보고 있었고, 카페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대기하는데부터 느낌이 쌔했다. 난 시간보다 일찍와서 대기 했지만, 내 시간이 넘어가도록 끝나지 않았고, 그 지원자가 나오고서야 내가 들어갔다. 프로젝트 매니저랑 리더, 이렇게 2:1 면접이었고, 예상대로 이력서를 보겠다고 하더니 처음 보는 듯한 눈빛으로 읽었다. 그리고 첫 질문이 들어왔다.

 

"군대 어디 나왔어요?" 육군, 철원에서 복무했다고 했다. 면접관 표정이 밝아지며, "전술훈련 뭐뭐 했어요? 유격 몇번 했어요? 혹한기 어땠어요?" 더 디테일한 군생활을 물어봤다. 힘든 군생활 속에서 버터야 SI 바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건가 해서, 어떤 훈련 했는지, 성실하게 훈련 참여 했고 선후임과 사이도 좋았다고 어필 했다. "오~ 역시 철원! 역시 빡세네. 근데 나도 빡센 데 있었어. 화천! 화천 ㅇㅇ부대 알죠? 나 거기 나왔거든, 눈뜨면 산타고 장난 아니지~" 마치, 내가 너의 군생활을 들어줬으니, 내 군생활도 들어줘라 느낌이었다. 그렇게 무려 20분 동안 면접관의 군대 썰을 듣게 되었다. 수시로 준비태세 했고, 제대별 전술훈련, 대침투훈련 엄청 빡세다는 얘기를 계속 들어서, 무슨 작전과장 출신인가 했는데, 일반 사병 소총수 전역 했더라.

 

그렇게 군대 썰이 끝나자 갑자기 하는 말이 "아까 있던 지원자 있죠? 그분이랑 비교가 많이 되네요. 좀 부족해 보여요." 라고 하더라. 밝은 분위기 속에서 전우애를 논하더니, 갑자기 직전 지원자와 모든 항목을 하나하나 비교하며 떨어진다고 면박을 줬다. '이런 부분을 보강 하는게 좋겠다'의 조언이 아닌 '넌 이래서 탈락이야'의 지적 이었다. 서류를 통과 해서 면접을 불러놓고, 서류에서 이런 부분이 부족 하다고 하면... 난 여기 왜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결국, 커피 마시면서 군대 썰 20분 듣고, 5분 동안 지적 당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왔다.

탈락 했고, 갈 마음도 없었다.

 

 

자랑으로 시작 해서 자랑으로 끝

앞서 말한 군대 썰 면접본 회사에서 탈락 연락을 받고, 며칠 뒤 다시 연락이 왔다. "다른 프로젝트 파견 팀 면접을 보러 오세요. 우리는 팀별로 사람을 뽑아요."  전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안 갈까 하다가, 하루라도 빨리 일을 배우고 싶어서 가기로 했다.

 

아파트 복도 방화문 같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긴 책상에 직원 여러 명이 앉아 있었다. 보자마자 '아, 파견 대기 중인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여기도 인력 파견 업체와 개발 회사 중간 어디쯤인 회사 같았다. 안내를 받아 사무실 구석, 정말 작은 회의실에 들어갔고, 원탁 하나 놓을 정도의 크기였다. 면접은 내 또래 직원 한 명, 팀장 한 명과 진행됨. 자기소개 후, 간단한 질문 몇 개 오가더니 회사 자랑을 시작 했다. 원래 면접때 회사 소개를 잠깐 하는데, 여기는 그 수준을 넘었다.

 

"알다시피 저희는 프로젝트 팀별로 사람을 채용하구요~" 로 시작해서, "대기업 ㅇㅇ 프로젝트, 공공기관 ㅁㅁ 프로젝트, 중견기업 ㅂㅂ 프로젝트... 우리가 수행한 프로젝트가 뉴스에도 나왔고~..." 모두가 아는 대기업의 프로젝트,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많이 수주 한 것 같았다.
"네네~" "오~ 대단하네요." "오 힘드셨겠어요." "와, 실적이 좋아서 배울 점이 많아 보이네요." 라는 식의 대답을 했고, 실제로도 꾸준히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회사가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팀원 칭찬을 하기 시작 했다. "이 친구가 아까 말한 ㅇㅇ공공기관 프로젝트에서, 오픈소스 뭘로 어떤 기능을 구현 했고, ㅇㅇ대기업 프로젝트에서는 뭘 만들었고~" 라며, 아까 잔뜩 말한 프로젝트를 다시 말하며, 그 친구의 성과를 어필? 하기 시작 했고, 마치 내가 그 친구를 채용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20분 동안 프로젝트 수주 자랑과, 직원 자랑을 다 들었다. 이분 내 이름을 알기나 할까 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면접 고생 했고, 사무실 직원 소개 해 드릴게요" 라며, 밖에 있던 사무실 직원에게 인사를 시켜 주셨다. 그래서 나도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인사를 드리며, 속으로 혹시 채용 되는건가, 나쁘지 않아 보인다 라는 생각을 했고, 면접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며칠 후, 탈락 연락을 받았고, 결국 같은 회사에서 두번 탈락 했다. 군대 얘기와 회사 자랑을 들으며.

 


 

 

 

끝.